벌써 10년 :: Guitar ::

오랜만에 그 동안 밀렸던 탑밴드 동영상을 다운받아서 보던 중이었다. 탑밴드에서 한창 인기몰이를 했던 게이트플라워즈의 보컬을 보면서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난 받아왔었다. 하지만 그를 이미 뮬에서도 봤던 적이 있기에, 뮬에서 봤나보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8강 공연에서 Paint it Black 을 부른 그를 보고 김종진이 Pearl Jam의 Eddie Vedder를 언급하는 순간 난 뭔가 '헉!' 했다. '아..이거 어디선가 들어본 소린데...' '그러고 보니 저 보컬 낯이 익은데...' '니가 부르는 모습을 보면 펄 잼의 에디 배더가 환생해서 돌아온 것만 같다' 라는 말...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2002년 쌈싸페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적이 있다. 밴드도우미 였는데 당시 흠뻑 빠져있던 자우림의 밴드도우미가 되지 못해 조금 실망해 있던 차였다. 내가 맡은 밴드는 '음프로젝트'라는 인디밴드. 숨은 고수 선발전에서 뽑혀서 쌈싸페에 진출한 팀. 말 그대로 정식으로 함께하는 밴드는 아니고 잠깐 뭉친 프로젝트 밴드였다.

리허설때부터 그들과 함께하면서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고,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공연에 초대해 주었다. (보컬 음양을 제외한 나머지 기타/베이스/드럼의 원 소속밴드가 따로 있었다) 그 공연을 혼자 가게 된 것이 나의 홍대진출의 첫 발검음이었다.

그 공연이 바로 홍대 슬러거에서 진행된 밴드 '쩝'의 공연이었다. 그리고 그 밴드의 보컬이 바로 지금 게이트플라워즈의 '박근홍' 이라는 걸 난 오늘 기억해냈다. 너무 인상적이라서 잊을 수 없는 목소리. 하지만 그 당시는 머리가 정말 짧았었고, 지금은 머리가 길어서 한 번에 알아보질 못했다.

설마 설마 하면서 아직도 가입되어져 있는 쩝밴드의 팬카페에 오랜만에 들어가봤다. 쩝밴드는 아직 활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닌가...하고 네이버를 뒤져봤다. 역시 그는 쩝과 게이트플라워즈를 오가다 2009년 게이트플라워즈로 정착한 걸로 보인다. 쩝의 나머지 멤버들은 그대로 인걸로 보이는데...

왠지 모를. 정말 왜 그런지 모를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럴까. 그가 공연하는 걸 내가 눈앞에서 직접 봤고 그 당시 다섯명이 채 되지 않는 손님 중의 하나가 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서, 2002년 성대에서의 기억이 갑자기 물밀듯이 너무나 갑자기 몰려든다.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기억들이 너무나 갑자기 밀려온다.

그 때와 같이 음악을 계속 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있는 한 보컬,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일상에 지쳐가는 나. 하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그 보컬과 함께 했던 다른 멤버들, 그리고 나. 2002년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인디밴드들이란 이런 사람들이구나. 밴드란 이런 거구나. 음악이란 거구나. 락페스티벌이란 이런거구나. 라는 수 많은 사실들을 한 꺼번에 알게되었던 시절.

그러고보니 벌써 10년이나 지났구나.


다시 재미 좀 찾아볼까. :: Brain Rolling ::

슬슬 적응좀 다시 해보자!

[0413] 모스크바 생활, 한 달 :: Moscow 10-11 ::

오늘로서 모스크바라는 곳에 발을 디딘 지 꼬박 30일. 그러니까 한 달이 지났다. 그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정신없이 시간들이 지나가는 통에 오매불망 꿈꿔왔던 휴식이란 것은 제대로 취해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 한 달이 지나고 해야할 일들도 하나 둘 씩 정리가 되가면서 뭔가 안정을 찾는 듯 하다.

지하철 폭탄테러가 있은 후로 되도록이면 지하철 타는 것을 피했다. 사실 모스크바라는. 러시아라는 곳을 공부하러 와서 이 곳의 대중교통수단인 지하철을 타지 않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래도 안전은 안전이니까. 라고 말하면 뭐하지만 사실 그 다음날부터 바로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왔다갔다 했다. 다만 좀 더 빨리 차를 살 수 있도록 서둘렀을 뿐이지.

차를 사면서 또 한번 느낀것은 언어의 한계와 기다림을 미학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어쨋든 나는 여기 외국인의 입장으로 와 있고. 외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것들이 모스크바나 러시아의 다른 도시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슷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우선 차량 구매를 결정하고 차량 판매딜러샵에 들러서 돈을 지불하고 그 샵에서 나오는 데까지 무려 6시간이 걸렸다. 이 사람들 보통 퇴근시간이 되면 바람같이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넉넉잡고 돈만 주면 되겠거니하고 2시간 여유를 두고 4시에 샵을 방문했다. 하지만 거기서 내가 싸인한 것만 무려 20번이 넘는 것 같고 보험 등록절차를 포함해서 최종적으로 내 손에 키가 쥐어지기까지 우리는 하루종일 배를 곯아가면서 버텨야 했다.

다음 날은 아마 공항에서 처음 입국심사를 받던 날 이후로 최고조를 달렸던 날이 아닌가 싶다. 데뻬에스(ДПС)라고 불리우는 교통경찰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서-이 나라를 들어오기 전에 외국인이 차를 몰고 다니면 수시로 교통경찰들이 차를 세운다음에 트집을 잡아서 뇌물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어서-새벽 5시50분에 일어나 차를 몰고 자동차 등록소로 향했다. 새차의 내음을 만끽하며 첫 기름을 먹여준 다음 상쾌하게 출발하던 찰나 주유소를 나섬과 동시에 도로를 타고 달려오는 교통경찰의 차량을 스쳐지나가게 되었다. 아니다 다를까 차창 밖으로 빨간 야광봉을 꺼내들더니 차를 세우라는 것이다. 이유인 즉슨, 차량 번호판도 안 단 것들이 그것도 동양인 네명이서 똑같은 차를 몰고 가는 것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즉 훔친 차 아니냐는 것이다. 다행히 선두에 가던 사람이 내려서 러시아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척 하며-사실 인사말 이후로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영어로 Registration. Police. New car 만 반복했더니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해서 국제운전면허증과 그 전날 받았던 무수히 많은 서류를 보여줬더니 다행히도 아무런 트집도 잡지 않고 통과를 시켜줬다. 그렇게 1시간 여를 달려서 9시에 문을 여는 자동차 등록소에 도착한 시간은 7시30분. 1시간 반 가량을 기다려 도움을 주기로 하신 분을 만나 9시에 투입. 대충의 프로세스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자동차 등록요청-기다림-등록비용 지불-등록기계고장-기다림-차량번호 대조검사-기다림-자동차 번호판 등록요청-기다림-한참 기다림-번호판 받음-신체검사소로 이동-별로 안 기다리고 형식상의 의학검사실시-기술검사소로 2시간 가량 걸려서 차량이동-기다리려다가 포기함.




기술검사라는 것은 1달이내로 받으면 된다고 하는데 사실 업자들은 무려 5시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일반인이 하려고 해도 8시에는 와서 줄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도 줄이 사실 상 없다고 한다. 안에서 불러주는 순서대로 라고 하는데 이게 또 돈과 연루되어 있고. 우연찮게 일찍 차고로 들어간다고 해도-차량 검사를 하는데 한 대 들어가면 차고 문을 닫고 한다-거기서 생트집을 잡아서 정비소로 보내버리면 거기서 일정금액 이상을 지불하고 다시 돌아와서 한참을 기다려야 통과라고 한다. 정말 뭐든지 쉬운게 없는 나라다.

하지만 차가 생기고 나니까 여유가 많이 생긴다. 쇼핑도 하고 싶은대로 잔뜩 할 수 있고. 라고 생각했지만 차를 사고 나니까 돈이 없어져서 기름 넣고 장 볼 돈이 사라졌다. 젠장. 어쨋든 이제 용산상가 같은 곳에 가서 네비도 인터넷 가격보다 400루블이나 깎아서 사고 여기저기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고 보니 맘이 편하다. 저번 주말에는 기타치는 친구들과 함께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악기점에 기타를 사기위해서 들렀다. 두 군데를 들렀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고 전시되어 있는 모델도 적고 가격도 너무 비싸서 오프라인 구매는 포기하고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아직까지 말이 안통해서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돈 주고 사는 건데 다 되겠지 싶어서 질렀다. 다행히 여기는 일단 물건을 가지고 집으로 배달오면 캐리어에게 돈을 지불하는 시스템이어서 인터넷으로 사기 당할 우려는 없을 것 같다.

자. 이제 한 달 살았고 어느정도 생활에 적응도 되고 하니 맘이 편하다. 라는 생각으로 오늘 학교를 갔다가 토할 뻔 했다. 이 정도면 생활하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단지 우리가 돈을 지불하는 형태의 행동만 해왔기 때문이었나. 학교에서 클래스를 다른 반으로 옮겨줬는데 너무 하이클래스로 옮겨 주는 바람에 그야 말로 4시간 동안 반 벙어리. 반 귀머거리가 되어서 있었다. 학교에 항의.를 좀 해서 다시 클래스를 내려달라고 했는데 아직도 러시아어를 배우는 길은 멀기만 한가보다.

이제 집에서 밥도 곧잘 해먹고. 설겆이도 잘 하고. 1주일에 한 번씩 서너시간씩 꼬박꼬박 집 청소도 한다. 버섯도 볶아먹고. 김치찌개도 해먹고. 된장찌개도 해먹고. 콩나물국도 끓여먹고. 이러다 정말 김치까지 담그지 싶다. 어째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부지런해진 것 같긴한데. 여기서 조금만 긴장 늦추면 폐인되기는 순식간일 것 같다.이제 1/12을 지나왔는데 앞으로 11/12는 어떨지 궁금하다.

젠장. 4월20일이 히틀러 생일. 4월22일이 레닌 생일. 4월30일이 히틀러 사망일. 5월9일이 승전기념일. 이라 스킨헤드 활동이 극에 달하는 시점이라 4월 중순. 즉 이번주 부터 5월 중순까지는 거의 활동을 자제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가 공연때는 대목에 속하는 것인지 이 사이에 메탈리카. U2. 잉베이 맘스틴. 게리 무어까지 아주 대형 투어들이 모스크바에 속속 들어온다. 처음 모스크바 와서 메탈리카 공연 포스터를 보고 아무 생각없이. 가야지. 라고 생각했으나. 날짜가 4월24-25일인것을 보고 포기했다. 아쉽다. 미국에서 에릭 클랩튼과 존 페트루치 공연을 못 보고 온 이후로 두고두고 생각날 아쉬운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다.

[0330] 모스크바 지하철 폭탄 테러 :: Moscow 10-11 ::

어제 아침에 일어나서 형들 전화받고 지하철로 나가서 어제 처음 모스크바 들어온 형을 데리고 학교에 등록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모스크바에 온 지 2주 째. 처음에는 좀 무서웠지만 이제는 적당히 적응되서 지하철도 탈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즈음이었다. 러시아도 모스크바 시내에서는 출퇴근 시간대 교통지옥이 심각하다. 그래서 짧은 거리라도 1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대신 러시아 지하철은 엄청 빠르다. 거의 1분 이내 간격으로 지하철이 연달아 들어오는데다 속도도 빨라서 대중교통 중 가장 빠르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서민을 위한 대중교통이라고 할 수 있다.

8시30분 집을 나서서 8시40분 지하철 도착. 우리 집 바로 앞에 있는 유고자빠드나야 역에서 지하철 탑승. 한 대를 먼저 보내고 8시44분 지하철 탑승. 근데 지하철이 문을 닫지 않고 약 20분간 그대로 멈춰 서 있는거다. 안내방송이 나오지만 뭐라고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없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도 별 다른 동요가 없다. 다들 대부분 그대로 있다. 몇 몇 사람들이 내려서 걸어가겠다고 할 뿐이다. 우리는 그냥 그렇게 지하철에서 20분간 기다리고 학교로 출발했다.

학교에 도착 1시간 즈음 수업을 하고 쉬는시간. 수업중에 형들 전화가 계속 울렸고 쉬는 시간을 통해 전화를 하는데 밖에 나가지 말란다. 오전에 지하철에서 2건의 폭탄이 터졌다는 거다. 섬뜩했다. 선생에게 우리 집으로 가야겠다고 이야기하자 안 그래도 몇몇 선생을 비롯해 학생들이 오전에 학교로 나오지 않았다는 건다. 젠장. 그러면서 왜 이야기를 해주지 않은거지. 어쨋든 우리는 불안한 마음에 2정거장을 걸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러시아 지하철의 한 정거장은 제법 멀다. 걸어서는 20~30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된다. 학교에서 나오자 길거리 곳곳에 총을 든 경찰들이 보인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다.

우선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 집으로 모여서 뉴스를 틀었다. 간신히 사전 검색해 가면서 뉴스에 뜬 헤드라인을 번역해 보니 오후 1시 현재 35명 사명, 73명 부상이란다. 이건 대형참사다. 7시44분 1건. 8시40분 1건. 그 시간엔 나도 지하철에 있었다. 폭탄이 터진 곳에서 겨우 6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센터에서 가까운 역 하나와 남쪽에 있는 순환선을 갈아타는 역 하나다. 순환선하고 겹치는 그 역은 나도 미술관과 영사관을 가기 위해서 두 번이나 들렀던 곳이다. 만약 오늘 영사관을 가기로 했다거나 센터에 사는 친구들이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마음 먹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진다.

체첸 반군의 자살폭탄 테러라고 한다. 왜 항상 테러는 불특정 다수 그것도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일까. 그것이 진정한 테러인가. 공격하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를 움직이고 불안감을 조장하기 위해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자신의 목숨을 하나 버리고 조국에 충성한다는 사람의 명목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지 과연 의문이다. 해당 역사에는 분향소가 차려졌다. 울먹이는 사람들을 보며 도대체 무엇이 이 테러의 목적이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 인해서 과연 원하는 결과를 그들은 얻었을까. 대량살상용 무기인 TNT가 왜 낡은 모스크바 지하철 안에서. 전쟁도 아닌 평화로운 아침 출근시간에 터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괜히 타 인종들에 대한 배척감이 심해져 안 그래도 다가오고 있는 스킨헤드 활동 전성기에 스킨헤드가 더 미쳐 날뛰지 않을까 여기저기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스크바라는 도시 정말 만만한 곳이 아니다. 입국하기 전에 2건. 입국하고 나서는 테러 1건. 이거야 원.

그러면서도 오늘 아침 또 학교 등하교를 지하철로 했다. 어쩔 수 없다. 어제보다는 이용객이 확 줄었다. 모스크바에 온 지 이제 2주. 시간이 참 길게도 돌아간다. 겨우 2주인데 마치 2달은 넘게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그래도 일 안하니까 좋지라고 하나같이 물어보지만. 생명을 담보로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 마저도 스트레스가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다. 나는 지하철도 두려워해야 하고. 스킨헤드도 두려워 해야 한다. 길거리의 경찰도. 지하철에서는 벽에 등을 대고 있어야 하고. 길거리에서 혼자 걸을때는 항상 전후좌우를 살펴야하고. 조금이라도 스킨헤드로 의심되면 멀찍이 지나치면서 한 동안 계속 뒤를 돌아봐야 하고. 밤 10시가 넘어서는 집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고. 되도록이면 경찰과는 눈을 마주치지 말아야하고. 과잉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2건의 사고 이후 현지 교민들도 몸을 많이 사리고 있다. 해당 사고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거의 한국인이 빠져 나간 상태다. 그런 곳에 난 제발로 걸어 들어왔으니.

앞으로 1년간의 생활이 어떻게 될 지 자못 나 조차도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한국 뉴스에도 떴다고 하는데 아래 주소에서 영상을 볼 수 있다. 번역 따위 부탁하지는 말자. 나도 알 수 없다.
http://www.rosbalt.ru/2010/03/29/723886.html

[0320] 러시아에선 음식을 한 끼 이상 먹을 수 없다 :: Moscow 10-11 ::

러시아에선 음식을 한 끼 이상 먹을 수 없다.

이건 당연히 낚시질이다. 사람이 어찌 한 끼만 먹고 살 수 있겠는가. 러시아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사람이라면 세 끼는 먹어야 정상이겠지. 하지만 상기 명제의 조건은 먹는 사람이 한국음식에 20년 이상 길들여진 평범한 한국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먹는 음식은 당연히 러시아의 전통음식일 것.

러시아의 전통음식들에 대한 소개를 잠깐 해 보려고 한다.

굼 백화점에 들른 김에 러시아 음식에. 도.전. 해보고자 스딸로바이 노메르 57(한국말로 하자면 구내식당 57번 정도)에 들렀다. 다행히도 어렵지 않게 직접 디스플레이된 음식을 살펴보고 골라서 접시에 담으면 마지막에 계산만 하면 되는 코스였다. 세 명이 한꺼번에 갔기에 서로 겹치지 않게 다양한 음식을 시켜서 먹어보았다.

우선 아래 식탁을 살펴보자. 왼쪽 상단이 본인의 접시. 우선 컵에 들은 하얀 액체는 끼피르 라는 것으로 요구르트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맛은 일반적인 우리의 요구르트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 그 시큼한 맛과 느끼한 맛이 마치 소스를 그냥 마시는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금방 적응이 된다. 꾹 참고 몸에 좋구나. 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먹을만한 정도. 그리고 잘 아는 오이와 토마토가 보일텐데. 토마토는 평범. 하지만 오이는 역시 시큼하다. 절인 오이인데 정확히 어디에 담가두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시큼한 식초에 넣었다가 뺀 듯한 느낌. 그리고 그 앞으로 보이는 것이 둘둘 말은 돼지고기와 당근 채썬것(까푸스따). 돼지고기는 역시나 느끼하고 더군다나 아주 질겼다. 그리고 말은 고기 안 쪽으로는 마치 건포도를 갈은 듯한 단팥 비스무리한 것이 들어있었는데 이것 역시 그나마 먹을만 했다. 당근 채썬 것은 약간 느끼하지만 그래도 본인의 식탁 중에서는 가장 먹을만 했다. 본인이 녹차까지 시키는 바람에 455루블의 가장 많은 값을 치뤘다. 1시간 동안 식사를 하면서 저 음식들을 내 위속으로 꾸역꾸역 밀어넣는 것이. 그 느끼함과 시큼함을 참으면서. 정말 힘들었다.

만일 내가 먹은 것 중에 다시 먹어보라면 당근 채썬 것과 끼피르를 제외하고는 시도해 보지 않을 것이다.

그 오른쪽으로 보이는 접시에는 빵이 한 조각 보이는데 이른 바. 흘리예프. 라고 부르는 전형적인 러시아 식빵이다. 이것 역시 시큼한 맛이 일품. 맛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시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의 양 쪽에 손잡이가 달린 곳에 담긴 붉은 액체가 바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음식 중의 하나인 보르쉬. 우리나라로 치면 스프나 찌개의 한 종류인데 러시아 사람들은 이걸 참 좋아한다. 막 퍼먹는다. 하지만 우리는 왠만큼 비위가 좋지 않은 이상 막 퍼먹지는 못한다. 저 붉은 액체 위에 얹어진 하얀 소스가 바로 스메타나라고 불리우는 역시 시큼한 소스. 사워크림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저걸 저 액체에 비벼서 안에 들은 여러가지 건덕지와 함께 떠 먹으면 된다. 기름이 동동 뜨는 것이 아주 느끼함의 극치를 달린다. 그리고 손에 살짝 가린 것이 삘메니라고 부르는 우리나라의 만두와 비슷한 것이다. 이건 가장 우리가 생각하는 만두와 비슷하지만 역시 접시에 기름이 가득. 그리고 이것 또한 스메타나와 함께 먹는다.

마지막으로 정면으로 보이는 것에 있는 스프는. 쉬. 라고 부르는 것인데 한국말로 표현하자면. 기름국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느끼하다. 난 한 스푼 떠먹고 말았다. 그 앞으로 보이는 것은 버섯그라탕. 이건 정말 노멀. 그리고 왼쪽으로 보이는 것중 왼쪽에 있는 것은 고기양배추쌈. 오른쪽은 감자커틀릿이다. 이것 역시 느끼하지만 그래도 가장 노멀했다고 할 수 있다.

돌려 말하자면. 아니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아래 식탁이 가장 한국인의 입맛에 맞았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에 왔으니 러시아 전통 음식을 제대로 한 번 경험은 해보아야 하지 않겠나. 라는 생각으로 덤볐지만 저녁나절까지 느글거리는 속을 주체할 수 가 없었다.

아래는 음식을 시켜놓고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들며 끼피르를 한 모금 들이키는 본인. 저 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일반적인 가정이나 식당에서 먹는 전통 러시아 음식들은 대부분 시거나 느끼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추운 지방에 살아서 그런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선호하고. 스메타나와 같은 신 맛이 나는 소스를 좋아한다. 치즈도 엄청 좋아하는데 우리나라의 그런 치즈가 아니라 정말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그런 아주 느끼한 치즈를 먹을 수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뭔가 매콤한 것이 같이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그런 건 전혀 없이 오로지 저런식으로만 식단이 이루어져 있다.

러시아도 다른 외국과 마찬가지로 한.중.일식을 먹기 위해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한국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밥을 먹기 위해서는 러시아 음식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 러시아 음식과 친해지기 위해선 내가 좀 더 느끼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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